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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연혁

구한말(舊韓末) 국운이 날로 기울어 가던 1906년 재상(宰相)인 충숙공(忠肅公) 이용익(李容翊) 선생이 「흥학교 이부국가(興學校以扶國家, 학교를 일으킴으로써 나라를 버틴다)」는 구국(救國)의 건학정신으로 '사립 보성중학교'를 설립하였다. 이 때 고종황제께서는 '널리 사람다움을 열어 그 뜻을 이루게 한다'는 의미를 담아 친히 교명(校名)을 하사하시었다.


보성의 개교는 그 당시에 관(官) 주도의 틀에 박힌 관립·공립학교, 특정한 종교적 이념에 따라 세워진 학교와는 달리 민족의 자발적인 교육정신을 바탕으로 순수한 민족 자본으로 설립된 민족사학(民族史學)이란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하겠다.


1919년 이러한 건학정신은 범민족 독립투쟁인 3·1운동의 구심점이 되어 그 핵심적 역할을 다하였다. 즉 당시 교주(校主)인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선생과 교장인 최린(崔麟)선생이 주도한 민족대표 33인 결성 및 참여, 학교 내 인쇄소인 보성사(普成社)에서의 독립선언서 인쇄 및 배포, 학생들의 독립 만세의 선도적 참여 등이 그것이다.


1940년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선생은 새로 동성학원을 설립하여 학교를 인수하고 민족정신의 말살을 꾀하는 가혹한 식민통치에 맞서 교육구국과 민족문화 창달의 기치를 높이 들어 보성 중흥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와 같이 보성은 개교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건학정신, 3·1운동 정신, 민족문화의 사랑과 가꿈이라는 3가지 큰 뿌리를 바탕으로 민족과 더불어 그 숨결을 같이 호흡하며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숱한 인재를 배출하여 민족사학(民族史學), 명문사학(名門私學)으로서의 역할을 다해 왔다.



초창기 수송동 교사(1927년 이전)

혜화동 중학교 교사

혜화동 고등학교 교사


현재 방이동 중고등학교 교사